3. 청 서태후
서태후의 서는 그녀의 성이 아니라 동,서태후란 의미입니다.
그녀는 만주족 고관의 딸입니다. 정식 시호는 자희태후입니다.
동태후는 정식 시호가 자안태후로, 함풍제의 정실 황후였고요,
서태후는 청의 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인데요.
그의 아들인 동치제가 6세에 황제가 되자
공친왕과 더불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일소하고
자신이 동태후와 함께 섭정으로 정권을 잡습니다.
그녀는 아들 동치제 시절 중체서용이란 모토를 내세워
서양의 문물을 배우는 양무운동을 시작하는데요.
양무운동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은 높았습니다만
서태후는 이 와중에 친정을 하고자하는 아들 동치제와 자리다툼을 벌입니다.
결국 동치제가 20세의 나이로 천연두에 걸려 죽자,
이번엔 서태후는 그의 여동생의 아들을 11대 제위에 올립니다. 바로 광서제이지요.
광서제는 청조 역사상 처음으로 선제의 혈육이 아닌 방계 출신 황제입니다.
광서제는 8대 도광제의 손자로 제위 계승권하곤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핏줄을 황제에 올리려는 서태후의 야망에 의해 황제가 되지요.
바로 같은 시기인 우리나라 조선 말기의 철종, 고종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철종과 고종 역시 선왕의 핏줄이 아니지만
철종은 안동김씨 순원왕후, 그리고 고종은 풍양조씨 신정왕후 등
당시 집권 할머니들의 입맛에 따라 옹립된 왕들이죠.
그런데 확실히 남의 씨는 거두기 어려운 법인지. 이놈의 광서제가 워낙에 말을 안듣습니다.
광서제는 이모인 서태후를 매우 싫어했고, 젊은이 답게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습니다.
1894년의 청일전쟁의 패배는 서태후의 생신잔치가 적쟎은 기여를 했는데요.
60세 생일을 앞둔 서태후는 이 생일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진상을 받았고,
이 때문에 군대로 흘러가야 할 돈이 서태후 생일 준비위원회에 들어가,
결국 청 이홍장의 북양함대가 일본 함대에 캐발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 측 주장이고,
청이 서태후 생일 잔치안하고 전쟁 준비했어도 해전에서 일본을 이기긴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광서제는 캉유웨이의 변법자강을 받아들여 1898년 무술변법을 실시하는데요.
이는 서태후의 방해로 좌절됐고, 결국 이후 좌절로 생애를 보내던 광서제는
이모에 대한 엄청난 원망과 저주를 일삼다 1908년 사망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서태후도 따라서 죽죠.
광서제를 이은 청조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이도 서태후가 황제로 만듭니다.
서태후는 약 50년간 동치제, 광서제, 선통제, 세명의 황제를 결정한 여자죠.
88년 나온 영화 마지막 황제의 첫장면이
황제가 되기 위해 자금성으로 찾아온 3살의 푸이가
누워 있는 할머니 서태후를 보는 장면입니다.
서태후는 푸이에게 자애로운 웃음을 날리다가도,
"황제(광서제)가 죽었느냐?"고 물어보죠.
결국 좌우의 시위가 황제가 죽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웃으면서 "이제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하고 이내 숨을 거둡니다.
서태후는 권력욕이 굉장히 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들 동치제, 조카 광서제와 권력 다툼을 했다 뿐이지,
이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적은 없습니다.
당시 청이 극도로 어려워져, 백성들이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이는 서태후가 무리한 정치를 한 탓은 아니며,
단지 청이 쇠퇴해가는 시점의 지도자가 서태후였을 뿐이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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