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시 이야기

雨中賞菊隣家小飮(우중상국인가소음) - 장유 [張維].......

 

 

雨中賞菊隣家小飮(우중상국인가소음) - 장유 [張維]

비 오는 날 국화를 감상하며 이웃집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갖다

 

寒雨蕭蕭沾菊花(한우소소첨국화) : 차가운 비 추적추적 흠뻑 젖은 국화꽃

寒 : 찰 한

雨 : 비 우

蕭 : 맑은대쑥 소, 쓸쓸할 소

蕭 : 맑은대쑥 소, 쓸쓸할 소

沾 : 더할 첨

菊 : 국화 국

花 : 꽃 화

 

 

 

濁醪初熟不須賒(탁료초숙불수사) : 애벌 익은 막걸리 더 기다릴 필요 있나

濁 : 흐릴 탁

醪 : 막걸리 료

初 : 처음 초

熟 : 익을 숙

不 : 아닐 불

須 : 모름지기 수

賒 : 세낼 사 [1.세내다 2. (외상으로)사다 3. 아득하다 4. 멀다 5. 느리다]

 

 

 

樽前但得盃長滿(준전단득배장만) : 술잔에 그저 술만 꾹꾹 눌러 주구려

樽 : 술통 준

前 : 앞 전

但 : 다만 단

得 : 얻을 득

盃 : 잔 배

長 : 긴 장

滿 : 찰 만

 

 

 

久客無心更憶家(구객무심갱억가) : 지긋지긋한 객지 생활 집 생각 다시 안 나도록

久 : 오랠 구

客 : 손 객

無 : 없을 무

心 : 마음 심

更 : 다시 갱

憶 : 생각할 억

家 : 집 가

 

 

 

 

장유 [張維] :

 

1587(선조 20)~ 1638(인조 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했고

이듬해 겸설서(兼說書)를 거쳐 주서(注書)·검열 등을 지냈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후 대사간·대사헌·대사성을 지내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다음해 신풍군(新豊君)에 봉해졌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했고

그뒤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했다.

1629년 나만갑(羅萬甲)을 신구(伸救)하다가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좌천되었으며,

1631년 딸을 봉림대군(鳳林大君 : 효종)에게 출가시켰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공조판서로서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강화론을 주장했다.

이듬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모친상(母親喪)으로 끝내 사직했으며 장례 후 과로로 죽었다.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4대가로 불린다.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정묘호란 때 거의 분실되고

〈계곡만필 谿谷漫筆〉·〈계곡집〉·〈음부경주해 陰符經注解〉가 전한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